가장 큰것 부터_05-06-2018

우편봉투에 주소를 쓸 때 서구인과 한국인은 굉장히 큰 차이점을 보입니다. 미국인은 존칭(Mr(s). Dr. 등) 다음에 수신자 이름과 성을 필두로 번지, 거리, 시, 주, 나라 이름 순서로 씁니다. 그와 반대로 한국인은 우편 주소를 쓸 때 국가, 도, 시/군, 동/면, 거리, 번지 그리고 성과 이름 및 존칭(귀하, 좌하 등) 순으로 씁니다. 무엇을 먼저 말하고 무엇을 나중에 말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이 두 문화간에 극단적으로 다릅니다.

주소 쓰는 방식으로만 따져본다면, 미국 문화는 세부적인 것을 먼저 확인하고 점점 더 큰 규모로 옮겨가다가 마지막에는 가장 큰 범주로 결론을 내리는 경험적이고 귀납적인 방식에 익숙한 것 같습니다. 반면, 한국 문화는 가장 큰 범주를 먼저 해결해놓고 점점 더 작은 범주로 내려가다가 마지막에 가장 구체적인 수준에 적용하는 직관적이고 연역적인 스타일에 익숙한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든 장단점이 있겠지만, 우리 문화의 장점은 큰 것부터 해결한다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 상황을 파악하여 대세(大勢)가 어느 쪽인지 빨리 알아내서 승자의 편에 붙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문화권에서 잘 살려면 눈치가 빨라야 합니다. 대세를 빨리 읽고 결정해야 생존할 기회가 많아지고 출세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강대국 사이에 오랫동안 끼어 있어서 필요했던 기술이겠지요.

그런데 인간이 내려야 할 가장 큰 선택은 무엇일까요? 인생이 선택해야 할 궁극적 대세는 무엇일까요? 인간이 꼭 알고 선택해야 할 궁극적 대세는 생명과 사망 둘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불행히도 많은 문화는 사망 앞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없다고 봅니다. 사망이 생명을 이긴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생명이 사망보다 더 강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생명이 사망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도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생명과 사망이 필연적 순서가 아니고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시고 영생을 누리십시오.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행복의 문으로 들어오십시오.   고구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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