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기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 라고 어느 분이 물어보셨습니다. 그 분은 아마 멋진 경치나 맛있는 음식이나 만났던 사람이나 방문한 교회 중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는가? 라는 의도에서 물어본 것 같습니다. 저는 주저하지 않고 ‘날씨’라고 답합니다. 올해가 세계적으로 이상 고온이 심하다는 말이 많은데, 참으로 날씨 때문에 도처에서 아우성 소리가 나고 있습니다.
저희가 필리핀을 방문한 7월은 우기에 해당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한 주간 지내는 동안 신발이 마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도착했더니 온 나라가 열기와 열풍으로 가득합니다. 집 앞에만 잠깐 나갔다 와도 옷이 땀으로 흠뻑 젖는 살인적인 무더위가 계속되고 연일 방송에선 한낮에 외출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폭염 경보를 알리고 있습니다.
날씨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바로 신발입니다. 우기인 필리핀에서 우산과 우비와 더불어 자주 눈에 띤 신발은 고무신 같은 구두였습니다. 장화를 신은 이들도 많았습니다. 가죽보다 고무로 된 구두라야 빗물이 고인 길을 걸을 때 방수가 잘 되고 젖더라도 금방 마르게 되니 그런 신발을 신을 수밖에 없겠죠. 서울에 왔더니 폭염 가운데 걷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신는 신발은 단연 슬리퍼나 샌달인 것 같습니다. 너무 무덥다 보니 심지어 집 안에서 신는 슬리퍼를 끌고 거리를 활보해도 아무도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날씨에 맞게 신발이 바뀝니다.
날씨에 따라, 필요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신발을 바꿔 신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들릴 법한 권면이 성경에 나옵니다. 에베소서 6장 15절은 우리가 늘 신어야 할 신발이 바로 “평화의 기쁜 소식으로 준비된 신발”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의 날씨가 흐리고, 내 주변의 인심이 흉흉하고,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험악할지라도, 평화와 기쁨의 소식으로 지어진 신발을 신고 가는 사람은 어디서나 환영받습니다. 화평케 하고 기쁘게 하는 복음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평화와 기쁨의 소식입니다. 인생의 날씨가 어떻든지 이 신발을 꼭 신으셔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고구경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