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느긋하게

비가 내리지 않는 새벽에 운전을 하지 않고 걸어서 교회에 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천천히 길을 걸으면 차로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도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운전할 때는 주로 전방을 주시하고 곁을
바라볼 여유가 없습니다만, 느긋하게 걸으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음미할 수 있습니다. 휘어진 나뭇 가지, 예쁜 꽃, 재미있는 광고 문구
등이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쓰레기 봉지, 깨진 병 조각, 망가진
보도블록도 보입니다. 천천히 걸으면 아름다운 풍경과 훈훈한 장면을
더 잘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지저분하고 불편한 것도 더 잘 보입니다.
빨리 지나치면 불쾌한 것들을 피할 수 있지만, 그와 함께 정겹고
사랑스러운 모습도 놓치게 됩니다. 길을 걸을 때뿐 아니라
인생살이도 그런 것 같습니다. 서두르다 보면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놓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도 이런 측면이 있습니다. 빠르게 핵심만
전달하는 대화는 고속 열차로 여행하는 것과 같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느긋한 대화는 풍광을 즐기며 걷는 산보와 같습니다. 느긋한
대화는 말을 천천히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더 많이
듣는 여유를 뜻합니다. 말이 술술 나오는 사람은 상관 없겠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꺼내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자신의 생각을 다 표현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바로 느긋한 산보
같은 대화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말을 두
배로 많이 들어 봅시다. 내가 하는 말보다 두 배 더 들어줄 때, 그
사람이 기뻐하고 결국엔 내 마음도 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대화가 될 것입니다.
야고보서 1:19 내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
따뜻한 대화는 기술이라기 보다는 ‘배려’입니다. 대화의 속도는
배려와 반비례합니다. ‘천천히 대화하기’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상대방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편안하게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잘 듣고, 관심사에 맞는 주제를
나누며, 불편한 주제는 피하는 것도 지혜로운 대화 방법입니다.
이렇게 배려가 넘치는 대화를 나누면 나눌 수록 친근한 관계가
됩니다. 우리 모두 천국을 향해 여행하는 순례자입니다.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즐기듯, 느긋하게 대화하며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고
신뢰 관계를 쌓아가는 복된 여행자로 사시길 바랍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고목사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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