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저는  두 언니와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5남매 중 셋째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엄격하셨고 필요하다면 체벌도 망설이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남편에게 순종적이고 가족에게 헌신하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개구쟁이에다 지고 못사는 성격이라 동네 대장 노릇도 하며 동네와 운동장을 친구들과 누비며 놀곤 했습니다. 당시 아버지와 저희 가족은 유교 사상을 따라 제사를 치르며 아버지와 친한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이곤 했습니다. 제사나 굿 행사가 너무 싫었지만 아버지가 무서워 반대하지 못하고 무조건 따라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교회를 다니던 친구의 권유로 몰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에게 걸려 혼나고 집에서 쫒겨나 2~3시간씩 밖에서 망을 보다 엄마의 도움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용돈은 물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으셨지만, 저는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이준만 목사님의 부흥회 때 설교 말씀을 듣던 중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제 가슴에 벅차 올라 뜨거운 눈물을 쉴새 없이 흘리며 안수기도를 받는데 “네 모양이 준수함처럼 네 믿음이 준수하여 우는 자의 눈물을 씻겨주는 종이 되리라”는 그 기도 말씀이 제 가슴에 각인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교회학교 교사, 학생부 임원, 성가대원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동생이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져 업혀 들어오면서 병원이란 병원은 다 가봤지만 병명을 찾지 못하다 급성 간경화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집으로 쫒기듯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은 초상집 분위기가 되어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는 작두 무당을 불러 당시 집 한채 값을 주고 굿을 하고 땅군에게 뱀들을 사서 집 마당에 묻어두고 매일 다려 먹이면서 용하다는 곳은 다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천주교 신자 한 분이 문안을 왔다가 아버지 몰래 기도를 해 주시고 가셨습니다. 그날은 물도 잘 못마시던 동생이 조금씩 받아먹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를 의아하게 생각하셨고 저는 그 이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중에 여의도에서 엑스폴로 74가 열렸습니다. 당시 집회에서 많은 환자가 기적을 체험했다는 소문을 듣고 저는 아버지와 싸우고 또 싸운 결과 동생을 데리고 집회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기도 받고 싶은 사람 모두 강대상 밑에 나와 앉으라고 하실 때 아버지 등에 동생을 업혀 어머니가 밀고 제가 아버지를 끌어 앞으로 나갔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많은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해 주시는데 조용기 목사님께서 “주여!” 하며 손을 얹어 꾹 누르시고 지나가셨을 때 숨을 헐떡이던 동생은 큰 숨을 훅 내쉬며 편안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또한 주님께 살려 줄 것을 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광장을 걸어서 나올 수 있었고 어른 주먹보다 크게 굳어 배 밖으로 튀어나오고 복수로 말갛게 보이던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순복음 교인들이 매일 두 번씩 심방 예배를 드려 주었고 아버지는 우상을 태우고 아들을 살려준 예수님을 영접 했으며,  3년에 걸쳐 동생의 간이 회복되는 사이에 아름다운 성도가 되셨습니다.

아팠던 제 동생은 이제 목사가 되었고, 둘째 언니도 목사가 되었고, 저는 전도사로, 큰 언니와 여동생은 권사로서 열심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때로 인생의 고비가 찾아 올 때 마다 믿음의 시험이란 것을 느끼지만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회개하면서 주께서 베푸시는 지혜와 능력의 도움을 받아 살고 있습니다.

윤소피아 권사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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