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실천

초등학교 때 삼일절 즈음이면 학교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또는 교실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하늘 높이 두 손을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우리 민족의 주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선조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리고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품게 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행사들에 참여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조상들이 목숨을 걸고 자유와 주권을 회복하기위해 흘린 땀과 피를 늘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원합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한반도의 개신교 인구는 약 20만에서 2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 내외에 불과한 소수였습니다. 그러나 민족대표 33인 중 16명(48.5%)이 개신교인이었으며, 투옥된 인사의 약 20%가 개신교 신자였다는 기록은 기독교가 민족의 고난 앞에 얼마나 주도적으로 나섰는지를 알려주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된 교회들이 각 지역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시위를 조직하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들은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의식을 전파하며 유관순 열사와 같은 청년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하는 독립운동의 산실 역할을 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 개신교 인사는 목사 10명, 전도사 3명, 장로 2명, 집사 1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장로교와 감리교가 각각 8명씩 참여하여 연합과 연대를 이루었습니다. 현대 한국 교회사에서 장로교와 감리교가 큰 부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두 교단이 민족이 고난받는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민족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했던 믿음의 선조들의 역사를 늘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변치 않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믿음을 실천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고목사 드림

Comments are closed.